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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야기] 재난 지원 못 받는 이유

최근 LA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돕기 위해, 샬롬센터는 UCLA 근처에서 재난지원센터에서 일하며 한인 커뮤니티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대와는 달리 도움을 받은 한인 피해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재난지원센터에선 많은 분에게연방재난관리청(FEMA) 재정 지원, 중소기업청(SBA) 재난 구호 대출, LA카운티 가구 구호 보조 프로그램들과 같은 다양한 도움을 제공했다. 또한, 피해자들이 안정적인 주거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비영리 단체들로부터 임대 지원 신청하는 과정도 도왔다.   재난 구호 센터에서 약 4000여 가구가 지원을 받았지만, 그중 한인 가구는 단지 몇 가구에 불과했다. 주로 백인, 흑인, 그리고 일부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은 셈이다. 물론 재난 구호 센터 외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왜 이렇게 한인 피해자들이 재난 구호 센터에서 혜택을 받지 못했는지 궁금점을 갖게 된다. 가장 큰 원인은 문화적 차이와 언어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재난 구호 센터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인 커뮤니티가 보다 적극적으로 재난 구호에 참여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한인들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제도적인 지원을 받기 위한 노력과 참여가 필요하다. 한인 커뮤니티는 앞으로도 한인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재난 구호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론이 가져다준 엄청난 고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많은 한인 주택 소유주들이 페이먼트를 못 내고 은행에서 차압통보를 알리는 독촉에 시달리다가 살고 있던 집을 버리고 떠나는 현상을 보고 중앙일보와 함께 차압 예방 세미나를 적극적으로 개최하며 한인들의 재산을 지켜드리기 위한 행사를 여러 번 가졌었다. 그 결과로 2000명의 한인 주택 소유주들의 주택을 지킬 수 있었다.     지금도 한인 커뮤니티가 겪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며 어떤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한인 커뮤니티가 함께 뭉쳐서 우리 한인 커뮤니티는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모기지 사태 때 한인 언론사들의 적극적인 홍보 덕택에 2000여 명의 한인 주택 소유주들이 정부에서 제공했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시기적절한 교육과 정부 지원 프로그램들은 많은 한인 주택 소유주들에게 재정적인 어려움과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안정감을 제공했다. 커뮤니티가 함께 뭉쳐서 위기상황을 돌파해 나감으로써 탈출구를 찾아가며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함께 나누었던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화재 재난 사태를 보면서 우리 한인들은 다양한 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보험으로만 해결하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양한 자원을 통해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인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가야 한다.   (필자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가필이나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의:(213)380-3700 이지락/샬롬센터소장부동산 이야기 재난 지원 한인 피해자들 한인 커뮤니티 재난 구호

2025-03-18

“나는 앞으로도 한인이고 한인 사회 일원”

80대 시니어가 사업을 시작했다. 돈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용기 있는 도전의 주인공은 ‘한인사회의 어른’으로 불렸던 고 민병수 변호사의 아내 캐롤 민(81) 여사다. 민 여사는 지난 2023년 민 변호사 타계 전까지 그의 곁을 지키며 한인 사회와 함께했던 인물이다. 40여 년 전 남편이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를 설립해 무료 변론 활동을 펼치고, LA폭동 때 한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설 때도 늘 옆에 있었다.   민 여사는 피부색은 달라도 자신을 한인 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한다. 남편은 떠났지만 지금도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민 여사가 시작한 사업은 유아용 침구·의류 제작 업체다. 업체 이름은 ‘민즈윔즈(MinzWhimz)’.     민 여사를 만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근황, 민 변호사와의 추억 등을 들어봤다.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려서 어머니, 할머니가 옷이나 이불을 만드는 걸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 영향인지 항상 새롭고 예술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또 바쁘게 살면서 활력을 얻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과거 유아용 옷이나 침구류를 한두 개씩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했었는데 그분들이 사업 아이템을 추천해 주셨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침구류의 경우, 베개와 이불을 만든다. 동물이 주인공인 동화책 하나를 선정해 해당 동물에 맞는 침구류를 디자인한다. 의류로는 상의, 하의, 모자 등을 만들고 있다. 의류의 경우는 동화책의 동물과 상관없이 만들고 있다. 손주를 위해서도 옷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사실 시작한 건 1년 반 정도 됐다. 본격적으로 홍보를 한 건 지난해 11월부터다. 며느리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홍보를 도와주고 있다. 그 전까지는 판매가 대부분 입소문을 통해 이뤄졌다.”   -제품은 어떻게 만드나.   “가내수공업 형태다. 원단을 직접 사 다 집에서 만든다. 원단 구매는 집 근처 업소도 이용하지만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많이 한다. 집에는 재봉틀이 3개나 있다. 제작 속도를 높이고자 재봉틀 2개를 한 번에 돌릴 때도 있는데 가급적이면 급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반응은 괜찮은지.   “생각보다 잘 팔려서 놀랐다. 아직은 지인들과 주변 소개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지인을 통해 연락이 온 한 여성은 바지와 상의 9세트를 사 가기도 했다.”   -사업의 목표가 있나.   “수입이 주목적은 아니다. 내 제품과 비슷한 게 시중에서는 80달러인데 나는 그 절반도 안 되는 35달러 수준에서 판매한다. 이 일이 즐겁고 바쁘게 사는 게 좋아서 하는 것이다. 또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민 변호사님이 돌아가신 지 1년 반이 지났다.   “아주 그립다. 아직도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고 그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을 들을 때면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그가 생전에 클래식 음악을 많이 소개해줬다. 남편과 나는 오페라 아리아곡을 특히 좋아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나 아리아곡은 아니지만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bye)’를 즐겨 들었다. 또 남편이 손녀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아주 아쉽다. 남편이 작고할 당시 생후 100일 됐던 손녀가 벌써 2살이 됐다.”   -한인타운엔 자주 오시는지.   “LA 한인타운과 한인 사회 모두 그립다. 사실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 대부분이 한인이다. 그들과 만나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냈던 한인타운이 그립다. 차가 없어서 한동안 한인타운에 가지 못했었는데 지금도 잊지 않고 사람들이 불러줘서 감사하다.”   -기억에 남는 한인 사회의 일은.   “1992년의 LA폭동이다. 당시 라 브레아에 살았었다. 한인타운에서 난 불길이 집에서도 보였다. 남편을 비롯해 한인 변호사 11명이 피해 업주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남편과 한인 변호사들이 한인 피해자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며 최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애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인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가 정말 크다. 많은 것에 고맙고 나 스스로 한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한인 사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와 남편을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한인 사회가 남편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민즈 윔즈 문의 :[email protected] 김경준 기자 [email protected]한인 일원 한인 사회 한인 피해자들 민병수 변호사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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